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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HANSEN MISSIONS

생명의 샘

하나님이 더 아프십니다. (행 7:55-56)

날 짜 : 2024.05.10
  • 양한갑
  • 24.05.10
  • 80

하나님이 더 아프십니다.

7:55-56

 


 

    딤전 6:11-12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강해야 합니다.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강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에는 고난이 동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 고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정면돌파를 선택합니다. 그들은 고난이 오면 더 깊은 기도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말씀 속으로 더 깊이 몸을 던집니다. 결국 그들은 하늘 높이 비상합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십시오. 바울은 비록 몸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그의 영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비상했습니다. 그의 비상을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을 보고 시험에 든 사람들은 바울을 떠났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독을 경험했지만 디모데에게는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8) 감옥에 갇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말했던 그 고난은 어떤 고난이었을까요?

 

    바울은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바울이었지만, 오늘에 주어진 고난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싫어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감사했고, 기뻐했습니다. 왜요? 고난을 통해서 더 성숙할 수 있었고, 더 성장할 수 있었고, 그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8:18) 그러므로 고난은 많은 유익을 줍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바르게 알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채워집니다. 고난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받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새로운 목표가 설정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에게 위대한 간증을 선물해 줍니다.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순교자가 있습니다. 스데반입니다. 그는 예수의 복음을 담대히 외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스데반을 보고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의인을 위해서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으셨느냐고 했을 것입니다. 스데반뿐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순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던 것입니까? 그들이 처절한 죽임을 당할만한 죄가 있었던 것입니까?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성난 바다도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앞치마만 가져다 환자에게 덮어도 나음을 입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추앙하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바울도 감옥에 갇혔고, 결국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의 능력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능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했던 자들을 불로 소멸하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졌던 자들의 손을 말라 비틀어지게 했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을 쳤던 자들의 자손들을 모두 패망시키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참 능력은 그 누구든지 나를 헤아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어떤 고난이 와도, 그 어떤 아픔이 와도, 그 어떤 죽음이 와도 그것들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능력은 그 어떤 고난보다 강하고, 그 어떤 죽음보다 강했습니다.

 

    그 능력이 스데반에게 충만했기에 그는 그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강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니 감히 가질 수 없는 참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7:55-56)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일어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아프셨으면 벌떡 일어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가 아파서 고통가운데 신음하면 부모는 뜬 눈으로 그 밤을 새웁니다. 그리고 자녀 대신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절규하셨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닥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때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더 아프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아맞아 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도 그처럼 마음이 아파서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의인들에게 왜 그런 고난이 계속 될까요? 아프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끝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장차 올 영광이 됩니다.

 

    독수리도 태풍이 두렵지만 그 태풍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합니다. 강풍을 뚫고 나가는 힘을 통해서 자신의 날개의 근력을 더 튼튼히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태풍을 기다렸다가 거친 태풍의 눈을 향해서 독수리는 두 날개를 펴고 높이 비상합니다. 힘이 없는 독수리는 하늘의 재왕이 될 수 없습니다. 독수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픔보다, 고난보다, 죽음보다 더 강한 참 능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고난이 와도 그 고난을 향해서 정면 돌파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파른 언덕을 넘으면 끝이 아니라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큰 산 정상을 향해서 믿음의 질주를 멈추지 않습니다. 스데반처럼, 바울처럼.

 

지금 아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때문에 더 아프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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