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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HANSEN MISSIONS

생명의 샘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신 34:1-6)

날 짜 : 2024.05.30
  • 양한갑
  • 24.05.30
  • 81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신명기 34:1-6



 

     2,500년 전 페르시아 제국이 중동을 지배했습니다. 그 페르시아 왕궁이 있던 곳이 지금 이란(Iran)입니다. 다니엘, 에스더, 느헤미야가 살았던 곳입니다. 그 당시에 고레스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44:28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또 이사야 45:1절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내 목자다. 내가 기름 부은 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약 200년 후에, 같은 이름 [고레스]가 페르시아 제국의 초대 왕이 되었고, 왕으로 취임하자마자 원년에 이스라엘 민족을 70년 만에 포로에서 풀어내어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칙령을 내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했고, 그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페르시아 제국이 후원하도록 했습니다. (에스라 1:1-4)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찬란한 업적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세계 역사에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모든 왕의 무덤은 정복자들에 의해서 잔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의 무덤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알렉산더 대왕이 고레스의 무덤 앞에 이르렀습니다. 고레스 왕의 무덤도 당연히 부숴버리려고 했지만, 그가 고레스 무덤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그의 군장을 벗고, 고레스 왕 앞에 경의를 표하고 떠났습니다. 고레스 무덤 앞에 세워진 커다란 비문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나 고레스는 세계를 정복했다. 그러나 언젠가 다른 왕이 이 땅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나 정복자여, 그대도 언젠가 누구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그러니 내 무덤을 건들지 말라.”


    모세는 그 고레스만 못했을까요? 오늘 본문은 모세의 무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는데,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34:5-6)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모세의 생애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 40년은 애굽 왕궁에서 왕자로 산 생애입니다. 두 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산 생애입니다. 세 번째 40년은 광야에서 민족의 지도자로 산 생애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바람은 갈수록 더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왕궁에서, 미디안에서, 광야에서 가면 갈수록 더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최후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34:4) 하나님이 그를 40년 동안 달고 닳도록 쓰시고 냉정히 버리셨던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를 외면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미워해서 무덤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미워해서 아들을 십자가에서 버리셨던 것입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복 받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습니다. 어떤 이는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삽니다. 어떤 이는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삽니다. 어떤 이는 평생을 보지 못하고 삽니다. 모든 사람이 올라가기를 원하지만 내려갈 때가 더 많습니다.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생애에서 큰 교훈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열두 사도들처럼 처음부터 부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보다 더 놀라운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백했던 대로 그에게는 평생토록 육체적인 질병과 고난과 환란과 핍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입니까? 그는 급기야 목이 떨어지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다 쓰시고 그를 그렇게 버렸던 것입니까? 우리의 대답이 아니오!”라고 한다면, 그 이유를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아니오!”입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올라가는 일을 잘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을 한결같이 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갈지라도 그들은 항상 빛 가운데 걸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작년 11월에 첫 번째로 눈이 어두워졌을 때도 받은 은혜였지만, 이번 두 번째로 눈이 어두워졌을 때도 받은 은혜가 너무 큽니다. 하나님께서 더 깊은 영성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홍해에서 애굽의 마병 부대 전원을 수몰시켜 죽였습니다. 말 그대로 [한순간]이었습니다. 열렸던 바다가 쿵! 합치면서 그들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한순간]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한순간]이 될 수 있었던 길을 [40] 동안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 광야 길에서 40년 동안 그들은 수많은 일을 만나야만 했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일도 홍해에서처럼 한순간 깔끔하게처리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홍해에서는 대적자를 [죽이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광야에서는 택한 자들을 [깨트리는 일]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 죄를 용서받고 살아야 할 사람들로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깨트리는 일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손에 정금을 움켜잡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정금 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로 연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치 않았던 내리막길로 내려갈 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첫째, 움켜잡지 말고 놓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움켜잡은 이들이 만들어 가는 피투성이 싸움판 같습니다. 내가 잡은 것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결사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목표로 했던 곳이 눈앞에 나왔지만, 그는 그곳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숨겨진 골짜기 아래로 혼자 내려가 그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습니다. 그가 고레스 왕만 못했습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도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패배하신 것입니까? 아버지의 권위, 남편의 권위, 회장의 권위, 목사의 권위 등등을 모두 벗어버리고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좋아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닙니다. 불에 타면 모두 재가 되는 것들입니다. 내 이름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의 영광이 올림을 받습니다. 내려가는 일은 패배가 아닙니다. 

 

둘째, 내 뜻을 내려놓고, 주의 뜻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고집, 내 야망을 내려놓고, 무조건 주님의 뜻을 붙잡아야 합니다. 붙잡는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음의 골짜기로 내려갔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만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너는 못 간다. 너는 안 된다.”라고 하셨을 때, 모세가 왜요? 나는 왜 안 됩니까?”라고 하나님께 대들었다는 말씀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자신이 믿음을 지킨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도록 우리를 끝까지 지켜줍니다. 믿음은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끝까지 지켜줍니다.

 

    고레스 왕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는 그의 무덤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정복자여, 내 무덤은 건들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그의 무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했습니다. 고레스 왕은 지금도 자신의 무덤을 그렇게 지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과연 그의 무덤은 영원할까요? 결국 모래가 되어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집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은 이 땅에 단 한 조각도 남겨두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는 이 땅에 다시 와야 할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11) 예수님의 무덤은 왜 비어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야만 하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들을 짧은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산을 넘으라 하시며 넘으면 됩니다. 강을 건너라 하시면 건너면 됩니다. 내려가라 하시면 내려가면 됩니다. 아파지라 하시면 아프면 됩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모세처럼 그냥 내려가면 됩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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