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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당신이 옳았습니다. (행 27:1-44)

날 짜 : 2024.06.03
  • 양한갑
  • 24.06.03
  • 64

당신이 옳았습니다.

27:1-44



 

     사도행전 27장에는 여러 인물과 지명이 등장합니다. 그 지명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알렉산드리아 호가 유대 땅 가이사랴에서 지중해 멜리데 섬까지 항해했던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지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돈(27:3), 구브로(27:4), 길리기아, 밤빌리아, 무라(27:5), 살모네(27:7), 그레데(27:7), 미항(27:8), 라새아(27:8), 뵈닉스(27:12), 가우다(27:16), 아드리아(27:27)입니다. 인물들은 바울(27:1), 죄수들(27:1), 율리오 (27:1), 아리스다고(27:2), 선장(27:11), 선주(27:11), 선원(27:18), 승객(27:35), 군인들(27:42)입니다. 그처럼 성경 한 장 안에 여러 지명과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AD 58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Caesarea)로 옮겨졌고, 그곳 감옥에서 2년 동안 있었습니다. (24:27) 그 당시 유대의 총독 베스도(Festus)는 바울을 로마로 호송해서 가이사(Caesar:황제) 앞에서 최후 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송책임자로 백부장 율리오(Julius)가 임명되었습니다. 바울은 죄수가 되어 끌려갔지만, 선상(船上)에서도 그의 선교는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호의 선장과 선주는 미항(Fair Heavens)에서 65km 떨어진 뵈닉스(Phoenix)로 가서 겨울을 나고,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지금 출항하면 큰 일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순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7:13)

 

    결국 배는 출항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 순풍은 광풍으로 돌변했습니다. 태풍 유라굴로(Euroclydon)였습니다. 성난 파도에 배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습니다. 무거운 짐들과 배의 기구들을 모두 바다에 던졌지만 유라굴로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소망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27:20) 그때 바울이 일어나 외쳤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했습니다. (27:22-25)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얼마나 담대한 메시지였습니까?

 

    14일째 되는 날, 배가 한 섬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때 사공들이 먼저 살기 위해서 거룻배를 바다에 내렸습니다. 그것을 본 바울이 백부장에게 말했습니다. 이 배를 떠나는 사람은 모두 죽을 것이오.”(27:31) 그러자 율리오는 군인들에게 거룻배의 줄을 끊어 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 명도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바울의 눈에는 공포에 떨고 있던 모습보다 높은 파고(波高) 속에서 14일 동안 먹지 못하고 굶주려 지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왔습니다. 바울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말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27:34) 바울은 떡을 가져오게 했고, 그 떡을 모든 사람 앞에서 높이 들어 올리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에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선장, 선주, 율리오, 군인들, 그리고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바울이 떼어 준 떡을 받아먹었는데, 그 수가 276명이었습니다. (27:35) 선상에서의 진정한 지도자는 선장도 아니었고, 선주도 아니었고, 백부장도 아니었고,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밥을 먹은 후에 알렉산드리아 호는 산산이 난파되고 말았습니다. 276명은 난파선의 조각들 위에 그들의 몸을 던졌습니다. 이제 그들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난파선의 조각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울이 준 믿음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 말을 기억하면서 그들도 이렇게 고백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것이 선교이고, 그것이 선교의 열매입니다. 신분과 계급과 인종을 넘어 276명의 가슴에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한 믿음, 같은 믿음이 깊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모든 이가 살아서 멜리데(28:1) 섬에 상륙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놓칠 수 없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제외한 275명의 시선이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미항에서 선장과 선주에게 출항하지 말 것을 미리 경고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경고를 무시했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단지 끌려가는 죄수였기에 무시해도 될 존재라고 취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선장, 선주, 선원, 율리오, 군인들, 배에 승선했던 모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사람만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성난 유라굴로와 높은 파도에서 벗어나 오직 바울만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높은 파도 속에서 자세를 낮추고, 배의 여기저기를 붙잡고 있을 때, 사도 바울 혼자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하늘 위로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들도 그 떡을 우러러보았을 것입니다. 모든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반전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난 61, 서울 시청 앞에서 있었던 [동성애 반대. 성차별금지법 반대] 시위 집회에 저도 참석했었습니다. 대형 스피커에서 발사되는 폭발적인 음량은 광화문, 시청 주변 거리를 세차게 때렸습니다. 저는 덕수궁 돌담 아래에 앉아서 잠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외침을 과연 누가 주목할까?” 누구도 아니고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일제강점기(1920년대) , 조선의 기독교 인구는 단 2%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에 등재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무려 16(51%)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외침에 주목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듣지 않는 이들을 탓하기 전에, 한국교회를 뒤돌아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나라가 불의와 부패와 타락한 문화라는 미친 광풍을 만나 무너지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홀로 순풍을 만난 배처럼 닻을 올리고 유람선처럼 축복대성회와 대형교회 설립에만 집착하면서 질주해 왔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등을 돌린 것입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깨어있는 성도들까지 등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덕수궁 길에 엎드려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방인들 앞에 담대히 일어나 외쳤던 사도 바울처럼 한국교회가 일어나 이 민족을 다시 살리는 예수의 복음을 외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물질적 기복신앙과 교회 성장이라는 야망에만 붙들려 있다면 한국교회는 더 무서운 돌풍과 역풍과 광풍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광풍을 기다리겠습니까? 바울도 그 광풍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호는 광풍 유라굴로가 기다리는 바다를 향해서 출항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광풍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광풍의 끝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그에게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275명은 자신들이 광풍 유라굴로 아래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오직 한 사람, 바울만은 [유라굴로] 아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걸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선상에서의 비명은 찬송이 되었고, 쇠고랑에 채워졌던 바울의 손은 성찬을 들어 올리는 거룩한 손이 되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유라굴로는 [지나가는 바람]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은 사람들을 무섭게 위협했지만, 단 한 명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바람] 앞에서 떨지 마십시오. 모든 바람을 다스리는 전능자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자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276명의 생명을 살린 이는 바다의 왕 선장도 아니었고, 돈 많은 선주도 아니었고, 법을 집행했던 백부장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재물과 그들의 권세는 광풍 앞에서 아무 힘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난파선 조각에 의지해서 멜리데 해안으로 상륙했던 그 276명은 돌아서서 그들이 지나왔던 지중해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유라굴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조용히 돌아서서, 하나 둘 사도 바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선장도, 선주도, 율리오도, 군인들도 사도 바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당신이 맞았습니다. 미항에서 당신의 말을 들었어야만 했었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처럼, 모든 한국교회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그 말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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